[독일문학]

[독일문학사] 중세 독일문학3

k2mbii 2021. 12.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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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사계급의 문학 - 2

 또한, 이 문학을 일명 '슈타우펜 조의 문학'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이 시대가 정치적으로 슈바벤 지방의 슈타우펜 왕조 출신 황제들 치하에서 꽃을 피운 문학이었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부르는 다른 중요한 이유로 문학이 슈타우펜 왕조의 융성에 따른 독일 기사계급의 자긍심으로부터 그 힘찬 창조적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하르트만 폰 아우에, 볼프람 폰 에쉔바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등 -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를 제외한 - 거의 모든 이 시기의 대가들이 슈타우펜 왕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음에도 이 시대의 문학을 '슈타우펜 조의 문학'이라고 부르는 진정한 이유가 바로 이 독일적 자긍심에 있다.

 또한, 이 시대의 문학이 '궁정문학'이라고 별칭되는 것도 슈타우펜 왕조나 기사계급보다도 이 문학의 새로운 무대인 '궁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궁정'이 특히 강조되는 이유는 이 '궁정'에서 신흥 기사계급의 새로운 예의범절이 형성되고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무인'에 불과한 기사가 주군과 그 부인을 가까이 모심으로써 점차 커가는 사회적 역할에 자긍심을 얻고, 그와 동시에 무술연마의 수단에 불과하엿던 자신들의 '격투'나 '모험'까지도 일종의 의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궁정은 그들의 활동 근거지인 동서에 자기 수련의 도장이기도 했다. 따라서 '궁정에 어울리는'이라는 중세독어의 형용사는 궁정 및 기사문화의 특성을 가리키는 형용사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교양을 지칭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당시 '궁정인'이라 할 때 그것이 '조야한 시골뜨기'에 반대되는 교양인을 가리켰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궁정'에서 발원하는 추상명사 '궁정성'도 단순히 '궁정적인 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기사계급이 궁정에서 생활하는 데에 갖추어야 할 갖가지 법도와 예절을 가리킨다. '예의 바름'이나 '예절'이 현대 독어로 'Höflichkeit'인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현대 한국에도 한 남자가 문 앞에서 숙녀를 먼저 들어가도록 양보한다든가, 어떤 모임이 끝나서 귀가하려 할 때 숙녀에게 외투를 입혀 주는 경우, 그 남자를 가리켜 '기사다운' 남성이라 말한다. 이 경우, '예절 바르다'를 현대 독어로 말한다면 'höflich'란 형용사를 사용할 것이고, '기사다운 남성'을 가리켜 'Kavalier'란 명사를 사용한다.

 그러면 중세 궁정사회에서 '조야한 시골뜨기'가 아닌 교양인, 즉 '궁정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과 수양을 갖추어야만 했을까? 우선 기사계급, 또는 그에 따르는 신분을 지녀야 했겠지만, 혈통과 가문이 좋은 집안의 자제나 말을 잘 타고 칼을 잘 쓰는 검객이라고 해서 곧 '궁정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절 바른'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궁정사회의 근본이념과 기사계급의 가치관에 알맞은 수행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처럼 기사계급의 가치 및 덕성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단순한 용감성 이외에도 '기쁨'을 들 수 있다. '기쁨'은 중세 궁정사회를 움직인 기본적 정감이며, 당시 사회에서 '기쁨'이 없다면 그 누구도 가치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개인의 고뇌와 운명보다는 궁정사회 전체의 기쁨에 넘치는 분위기가 중시되었기에 기사의 몸가짐 중에 가장 으뜸가는 것이 우선 '기쁨'으로 전체 모임의 흥겨운 분위기에 기여하려는 자세였다. 궁정문학은 개인의 체험문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교 문학으로 시인이 '기쁨'을 노래해도 개인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쁨'을 통하여 궁정사회 전체를 기쁘게 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개개인이 교양 있는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긍심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쁘고도 고조된 기분을 이 시대의 기사들은 특히 '높은 기상'이라 일컬었다. 기사의 '기쁨'은 궁정사회에서 나타난 남성적·역동적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으로서, 기사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성정과 몸가짐이었으며, 동양의 군자에게서 흔히 요구되던 '호연지기'에 견주어 볼 만하다.

 이런 '기쁨'이나 '높은 기상'에 원동력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궁정사회 내 '귀부인'의 존재였다. 귀부인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여성의 존재는 궁정에서 '기쁨'의 원천이며 '높은 기상'을 일깨워 주는 원천이었다. 성모 마리아 숭배의 문화적 변형으로 볼 수 있는 기사들의 이 여성숭배는 여성이야말로 남성보다 더 청순하고 완전한 창조물이라는 중세적 인식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용감무쌍하고 강건하며 피나는 투쟁을 업으로 하는 기사계급이 이처럼 청순하고 완전한 여성에게서 위안과 귀의처를 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기사들의 용감하고 피나는 투쟁이 여성의 은총과 거기서 받게 되는 '기쁨'에 의하여 정화될 수 있다는 일종의 형식 및 의식이 필요하게 된다.

 

출처

안삼환, 「한국 교양인을 위한 새 독일문학사」, 세창출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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