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

[이론] 레싱의 작품론

k2mbii 2021. 12. 2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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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레싱의 시민 비극론
2.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대해
3. 레싱의 고췌트 초기 연극론 반박

1. 레싱의 시민 비극론

 

  18세기의 독일 사회에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 감성을 중시하는 감성주의가 대두되자 개인의 권리와 감정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 그래서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이분화되면서 가정은 문학적으로 더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가정18세기 독일 시민비극에 등장한다. 레싱은 독일 시민비극의 장르를 성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시민비극에 등장하는 가정은 가부장적인 면이 크다. 어머니의 역할은 크지 않으며, 아버지의 이성과 감정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면이 크다고 해서 아버지의 모습이 권위적인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며, 마음이 약한 감성적인 모습도 종종 보여준다. 레싱의 대표적인 시민비극 작품인 에밀리아 갈로티에서 아내를 권위적으로 대하는 갈로티 대령도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밀리아 갈로티는 시민가정의 불행을 다루는 작품이다. 레싱은 이 작품에서 나오는 궁정의 비도덕성과 시민 가정의 도덕성의 대립은 계급 간의 투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가정의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시민비극에서 시민은 안정적이며 도덕적이고, 풍부한 감성을 의미한다.

  그 당시 여성은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레싱은 에밀리아 갈로티에서도 이 편견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 표현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성장한 남성 작가 레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자답게 당대의 편견 타파와 개인의 권리 강조를 위해 극적으로 쓴 것이다. 레싱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는 시기에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감성을 지닌 딸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흔들림을 예견했다.

 

2.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대해

 

  1766년 독일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대해라는 글을 발표한다. 이 글은 레싱이 베르길리우스에 대한 빙켈만의 평가를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레싱은 고대 그리스 조각 라오콘 군상 Laokoongruppe을 근거로 들었다. 라오콘 군상은 트로이 전쟁 마지막 시기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뱀에게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받는 고통을 묘사한 작품이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빙켈만은 이 작품을 절제와 균형의 미를 완벽하게 표현해냈고, 위대한 영혼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본다. 반면에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라오콘이 도끼에 목이 잘린 황소처럼 울부짖는데, 이 소름끼치는 단말마의 비명이 하늘까지 울려 퍼질 정도였다

 

라고 표현하는데, 빙켈만은 라오콘 군상에서 표현되는 위대한 영혼을 서술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레싱은 작가가 고민의 노출을 피한 것, 즉 절제는 위대한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태가 추악하게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술이나 조각 등의 조형예술은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한 장면에 담아내는 공간예술인 반면, 문학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의 전 과정을 기술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학과 회화의 차이를 구분했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고백컨대, 빙켈만이 베르길리우스에게 던진 비난의 눈초리는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가 없다. [···] 비명이란 육체적 고통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위 글은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에 나오는 내용이다. 똑같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문학과 회화에서 표현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기에, 레싱은 베르길리우스에 대한 빙켈만의 평가는 잘못되었다고 반박한다.

  레싱의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는 문학과 회화의 구분이 없었던 그 당시에 상당히 대담한 주장이었다. 이 구분을 통해 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자각을 촉진했다.

 

3. 레싱의 고췌트 초기 연극론 반박

 

  고췌트는 독일 문학사에 있어 크게 기여한 과도기적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레싱과 종종 비교된다. 그 이유는 레싱이 고췌트의 견해를 반박하기로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먼저, 레싱은 고췌트가 독일의 사고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프랑스적인 틀에 무대예술을 맞추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고전작가의 틀을 배척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지지했다.

  또 하나, 고췌트는 교술 목적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레싱은 뜻을 달리했다. 계몽주의자답게 레싱은 극장 무대를 유용과 교술의 장이라 규정하고, 교술적 효과를 강조했다. 레싱은 연극을 사회현상이라 간주했기 때문에 연극의 오락성과 교술성 모두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극은 관중의 인간성을 발전시키고, 교육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고췌트는 사회적으로 우수한 영웅들을 비극에서 다루어야 하며, 시민생활의 갈등은 오로지 희극에서만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레싱은 비극에서도 시민 생활의 갈등을 다룰 수 있다고 반박한다. 레싱의 이러한 주장 이후로 독일연극은 시민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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