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 2.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나온 문학의 정의 3. Blowin’ in the Wind’는 문학작품인가? 4. Knockin’ on Heaven’s Door는 문학작품인가? 5. 광화문 연가는 문학작품인가? 6. 창세기는 문학작품인가? 7. 로마제국쇠망사는 문학작품인가? 8.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문학작품인가? 9.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작품인가? 10. 비극의 탄생은 문학작품인가? 11. 에두아르트의 귀향은 문학작품인가? 12. 우리는 문학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13. 내 일기는 문학 텍스트가 될 수 있는가? |
1. 들어가는 말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여 아홉 개의 텍스트가 문학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문학작품의 개념을 정의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써보려 한다. 문학작품의 개념이 성립되면 과연 내 ‘일기’는 문학작품의 범주에 속하는가에 대한 내 견해도 말해보려 한다.
2.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나온 문학의 정의
문학을 정의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지금껏 있어왔다.
문학은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의미에서 ‘상상적인’ 글이라고 정의를 했었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언어를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즉 일상언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을 나타내는 부류가 문학이라고 정의를 했었고 모든 문학을 사실상 ‘시’로 생각했다.
또한 ‘비실용적인’ 글이 문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읽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한계를 가졌다. 열차 시간표를 보고 열차가 언제 오는지 알아본다면 ‘실용적’으로 읽힌 것이고, 현대생활의 속도와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열차 시간표를 바라봤다면 그건 ‘비실용적’으로 읽힌 것이기 때문이다.
세기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는데, 한 작품도 한 세기에는 철학으로, 다른 세기에는 문학으로 읽힐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다음 세기에서는 삼류 작품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을 정의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어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문학을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했다. 독자가 어떻게 읽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문학의 기준은 다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 9개의 텍스트를 지금껏 있어왔던 문학의 정의를 토대로 왜 문학작품이 될 수 있는지 분석해보려고 한다.
3. Blowin’ in the Wind’는 문학작품인가?
<Blowin’ in the Wind’>는 1962년 밥 딜런이 만든 음악이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남북전쟁 무렵 흑인이 불렀던 <No More Auction Block>에서 빌려 온 것이라고 한다. 전쟁 반대, 인권 평등을 주제로 한 이 노래는 밥 딜런의 대표작이다.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는 문학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된다’이다. 현재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는 전쟁 반대, 인권 평등 등 당시 현실을 짙게 반영하고 있는 노래로, 팝계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저 그런 대중가요의 가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피터 폴 앤 매리, 오데타, 채드 미첼 트리오 등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그래서 이 노래는 평범한 대중가요가 아닌, 그 당시의 모습을 반영한 작품이기 때문에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러시아 비평가 ‘로만 야꼽슨’의 이론에 의하면 문학은 ‘일상언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이라고 한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와 다른 문장을 쓰면 그 문장은 문학적인 것이다. 가사 중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있다네’라는 문장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노래는 ‘낯설게 하기’ 기준에 부합하므로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
4. Knockin’ on Heaven’s Door는 문학작품인가?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는 문학이라고 분류하기엔 다소 애매했다. 이 노래 역시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여 부르고, 심지어 영화의 테마곡으로도 삽입됬지만 ‘일상언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은 없었다. 충분히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았다.
하지만 교훈의 유무를 따진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무기 사용을 원치 않는다는 가사 내용을 보아, 보안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누구의 이야기가 됐건 간에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은 확실하다. ‘교시적 기능’의 유무 관점에서 봤을 때 <Knockin’ on Heaven’s Door>는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5. 광화문 연가는 문학작품인가?
광화문 연가는 이영훈이 작사하여 이문세가 노래했다. 가사를 읽다 보면 시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생각한다는 것은 실상 모든 문학을 ‘시’로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노래는 시와 비슷하게 운율이 있고 간결하며, 명료하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정의를 기준으로 둔다면, 이 노래는 시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6. 창세기는 문학작품인가?
성경을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게 너무 많다. 문학을 정의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가 ‘문학은 지어낸 것이라는 의미에서 상상적인 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가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데, 그럼 지어낸 것이 아니니까 문학이 아닌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소설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텐데,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성경이 문학작품인가? 라는 두 가지의 물음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이 기준은 문학이라는 제목 밑에 어떤 것을 포함 시키는가를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를 쓴 사람은 분명 자신의 신학적 믿음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썼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성경은 문학작품으로 많이 읽히고 있다. 왜 문학작품으로 읽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구절을 보면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처럼 ‘~더라’라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즉 창세기에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화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 보통의 문학작품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려는 메시지, 즉 주제가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써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에 대해 알게끔 해주고 믿음을 가지게 하는 메시지가 있다.
화자, 주제가 있다는 것은 문학작품의 형식과 같다는 것이고, 곧 창세기는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7. 로마제국쇠망사는 문학작품인가?
<로마제국쇠망사>는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1776년부터 1789년까지 6권으로 집필한 역사서이다. 이 책에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부터 동로마 제국 멸망까지 무려 1200년간의 기간이 서술되어 있다. 계몽주의 역사학의 대표적 작품이며, 영문학사상의 명저로도 꼽힌다고 한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정치 지도자들의 안일과 탐욕은 부강한 나라도 망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동맹관계에 대한 교훈, 내부 분란을 잘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가르쳐 준다. 문학의 특성 중 하나인 ‘교시적 기능’, 즉 교훈이 담겨있기에 <로마제국쇠망사>는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로마의 흥망성쇠를 통해 교훈을 도출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면 이 작품은 실용성 있게 읽히는 것이다. 비실용적으로 읽히는 작품을 문학으로 본다면 실용성 있게 읽는 독자에게는 문학작품이 될 수 없다.
8.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문학작품인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도덕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담은 책이다.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은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일을 탁월하게 수행했을 때 가장 행복해지고, 이 행복은 인생 전체에 걸쳐서 덕을 얻으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감정을 잘 다스리라는 교훈이다. 이 책 역시 교훈이 담긴 ‘교시적 기능’을 하므로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봐서 ‘비실용적’으로 읽히는 것이 문학작품이라고 한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문학작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만약 제시된 텍스트를 정말 실용적인 정보 전달문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문학작품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에 달린 것이다.
9.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작품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톨스토이 필생의 대작이다.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죽기까지 톨스토이의 인생관이 담긴 책이다.
문학의 정의 중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글’이 있다. 하지만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또 할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본래적으로 가치있는 문학작품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지면 대작, 문학작품으로 여겨지던 저작이 다른 한 세기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출간했던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쭉 사랑받아오고 있다. 충분히 가치 있는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비추어 문학 작품들을 해석하기도 한다. 악서를 멀리하고 양서를 가까이하라는 책의 내용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 있게 받아들일 것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틀림없이 톨스토이가 말한 ‘양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즈음 유행하는 만화책, 공상과학소설 등의 판타지요소가 섞인 책은 ‘악서’인가?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책, 평판이 자자한 책은 아예 읽지 말아야 한다”라는 톨스토이 말에 따르면 인기 있는 만화책, 소설은 ‘악서’일 것이다. 만화책,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저서가 틀렸다고, 가치 없는 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0. 비극의 탄생은 문학작품인가?
<비극의 탄생>은 1872년에 독일의 철학 사상가 니체가 출간한 처녀작이다. 그리스 비극 정신이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독창적인 그리스 해석을 전개한 니체는 그 당시 문헌학계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니체의 책이 전혀 무시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이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는 문학의 정의를 하나 알 수 있다. 이 책이 나올 그 당시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훌륭한 철학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즉, 사람들은 한 세기에 따라서 작품을 철학, 문학으로도 볼 수 있고, 이단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가치 있는 문학작품은 없다.
그러므로 <비극의 탄생>은 니체가 살던 시절엔 문학작품이 아니었고, 현대에 이르러서 문학작품이 된 것이다.
11. 에두아르트의 귀향은 문학작품인가?
이 작품은 페터 슈나이더가 쓴 작품이다. 독일 통일부터 베를린 재건 과정까지의 기록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주인공 에두아르트가 깊은 고뇌와 번민을 겪고 마침내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렸다. 이 책 역시 교훈을 담고 있다. 통일한지 얼마 안 된 독일인들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나치 과거에 대한 성찰의 계기도 제시한다. 이미 문학의 기능인 ‘교시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 작품은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은 읽기 나름이기 때문에 <에두아르트의 귀향>이 문학으로써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 통일부터 베를린 재건 과정까지의 역사적인 사실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평소 산문체를 즐기고 역사적 진실이 아닌 주인공의 자아를 찾는 여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작품은 문학으로서 읽는 것이 아니다. 이때 이 작품은 ‘교시적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12. 우리는 문학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아홉 개의 텍스트를 살펴보았다. 대부분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학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
100명의 사람이 있다고 치면 문학을 정의하는 기준은 100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문학은 읽기 나름이고, 같은 작품도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밥 딜런의 노래를 ‘일상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의 유무를 기준으로 본다면 같은 사람이 만든 노래들이라도 문학작품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훈의 유무를 기준으로 본다면 두 노래 모두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모든 문학을 사실상 ‘시’로 생각하는데, 광화문 연가는 시와 비슷한 구조로 볼 수 있어서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밥 딜런의 두 노래도 시와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성경은 또 어떠한가. ‘화자’가 존재하고 ‘교훈’이 존재하는 문학의 특성에 기준을 두면 성경은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허구성 짙은 글이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로마제국쇠망사와 니코마코스 윤리학 모두 교훈을 제시하는 문학의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비실용적으로 읽히는 작품이 문학이라는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이 두 작품은 문학으로 분류되지 못할 수도 있다. 로마제국쇠망사를 로마의 흥망성쇠를 통해 교훈을 도출하고자 하는 독자가 아니라, 고대 로마에 대해 신빙성 있는 정보를 제공 받으려고 읽는 독자에게는 문학작품이 될 수 없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역시 윤리학을 공부하려고 접근한다면 문학이 아닌 정보 전달글로 분류될 수 있다.
비극의 탄생은 그 당시에는 문학으로 분류되지 못하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문학으로 여겨지는 작품 중 하나다. 세대가 바뀌면서 중요시 되는 가치관에 따라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에두아르트의 귀향을 살펴보자. 이 두 책 역시 읽기 나름이라 독자에 따라 문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같은 사람이 만든 노래라도, 같은 작품이라도 문학을 나누는 기준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앞서 말했듯이 100명의 사람에게는 100개의 문학적 기준이 있다. 그러므로 문학의 개념은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본다.
13. 내 일기는 문학 텍스트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일기를 써본 적이 있다. 군 복무 시절 하루하루 고됨과 힘듦을 자기 전에 돌아보고자 시작했었다. 그 일기장에는 오늘 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 먹은 음식, 했던 훈련, 선임에 대한 욕, 동기에 대한 아쉬움, 마음에 안 들었던 점 등이 쓰여있다. 겉으로 봤을 때 내 일기는 전혀 교훈도 없고, ‘시’도 아니고, ‘비실용적’으로 읽히지도 않는다. ‘문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 일기가 많은 세월이 흐른 먼 훗날 발견이 되었고, 그 미래에는 군대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내 일기를 발견한 사람이 사라진 2000년대의 군대에 관심이 생겼고 가치 있게 읽는다면, 내 일기는 그 사람에게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
시대에 따라서, 독자의 관심사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내 일기는 문학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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