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본고는 카를 모어를 폭풍우와 돌진주의자로, 프란츠를 계몽주의자로 간주하고 이 둘을 분석하여 칸트의 계몽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비판해 볼 것이다. 또한 폭력적 저항에 대한 실러의 입장과, 『군도』가 가지는 문학적 결함을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계몽주의란 17,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났으며,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자는 사상이다. 이와 같은 정신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했다.
독일의 계몽주의는 그 당시 시민사회의 발달이 미미해서 봉건주의 타파를 위한 적극적인 정치활동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유럽의 계몽주의와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제 2의 계몽주의적 현상으로 나타난 종교의 경건주의(Pietismus)와 문학의 감상주의(Empfindsamkeit)다. 경건주의는 기독교인다운 경건 생활과 실천 중심의 종교 운동이며, 감상주의는 계몽주의의 지나친 합리성에 대한 반발로 인간 내면의 감정을 중시했다. 특히 감상주의는 계몽주의와 슈투름 운트 드랑 사이에 있었던 독립적인 문학사조로 보기도 한다.
질풍노도 운동(Sturm und Drang)은 감상주의와 비슷하다. 이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성을 되찾자는 계몽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았지만, 그 이성이 오히려 인간성을 억압하려는 순간 폭풍우와 같이 타파해 나가는 문학사조다.
2. 본론 : 작품분석
프란츠는 첫째인 카를을 시기해서 아버지를 속여 형을 추방시키고, 형의 여자인 아말리아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가족을 과감하게 포기해버리는 프란츠의 모습은 악랄하고, 계산적이며 이성적이다. 종교인의 경고도 무시하며,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 아버지이며, 처음 태어난 사람이 형이라는 사회적 진리들은 프란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현실의 삶, 쾌락이 훨씬 더 중요했다. 하지만 종교와 사회 체제를 무시하며 이성으로 기존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모습은 계몽주의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과 이성의 사적인 사용을 구분했다. 칸트의 철학에 따르면, 이성의 사적인 사용이란 “인간에게 맡겨진 지위나 공직에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고, 복종해야 하는 자리에서의 이성의 활용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란 “지위나 공직에서가 아니라 학자로서” 공개적으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고 자유로울 수 있다. 프란츠는 이성을 맡겨진 지위에서 사적으로 사용하지만, 복종하지 않고 사회의 법과 관습을 넘어서는 과도한 자유를 추구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독일의 계몽주의 특징 중 도덕성 강조, 종교의 경건주의가 있다고 앞서 밝혔다. 프란츠는 도덕성이 매우 부족한 인물이다. 구습에 저항하고 이성을 중요시했지만, 가족을 버리는 행동과 종교를 무시하는 언행 등을 근거로 프란츠는 독일 계몽주의 사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도덕성’의 결여라는 큰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에 도적 떼들이 쳐들어올 때, 프란츠는 평정심을 잃어 무의식중에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지옥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자살을 하고, 도덕성, 종교의 경건주의에 굴복하게 되면서 그의 저항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프란츠의 계략으로 세상에 혼자 남겨져 도적 떼를 이끌게 된다. 영주가 보낸 목사의 항복 권유를 듣지 않고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봉건세력과 종교에 반하여 인간성을 복구하고자 하는 카를의 의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봉건세력의 횡포에 대항해 도적 집단을 이끌었으나 그 이면에는 더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사회 개혁이라는 슬로건에 숨어서 도적 떼들은 약자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선량한 사람들을 협박하며 사기를 치는 등 도적질, 살인을 일삼았다. 카를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다. 이 죄들로 인해 카를의 아버지는 두 번 죽음을 맞이하는 꼴이 되고, 아말리아는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에 그가 도적 집단에서 해방되어 가난한 이웃에게 자신의 목을 맡기려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나마 의적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모습이라 판단된다.
칸트는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네 자신이 가진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칸트의 계몽주의 철학이다. 카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자신감을 가지고 해내지 못했다. 처음 도적 떼를 이끌게 된 원인도 프란츠의 계략 때문이었고, 도적 떼들이 저지르는 폭력사태가 잘못된 일임을 알지만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따라서 칸트의 계몽주의 철학에 의하면 카를의 저항은 계몽이라고 볼 수 없다.
본고는 실러가 폭력적인 저항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도적 떼들을 도덕성이 없는 집단으로 그렸고, 카를의 저항 역시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끝까지 명예를 지킨 아말리아를 죽이는 것은 카를이 도적 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도 있지만, 도적 떼들의 잔혹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폭력적인 저항은 이미 모순투성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실러의 생각이다.
『군도』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처녀작답게 많은 결함이 있는 작품이다. 1막, 2막에서 나오는 프란츠의 인물 묘사와 독백은 이미 관객에게 프란츠의 음모를 모조리 알려주면서 극의 긴장감을 낮춰버렸다. 또한 카를은 한 가문의 장남이며, 대학에서 7년이나 공부한 인물인데, 프란츠의 위조 편지를 알아채지 못하는 모습은 초기 인물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극 중 코진스키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의 애인 이름 역시 아말리아인 우연성은 짜맞추기식의 극 전개로 보인다.
3. 결론
‘쫓아냄’을 행한 프란츠나, ‘쫓겨남’을 당한 카를 모두 사회에 대한 저항이 실패로 끝이 났다. 이는 두 인물의 저항이 실패됨을 보여줌으로써 실러는 독일식 계몽주의와 맞지 않는 행위에 대해 경고했다.
독일의 계몽주의 특징 중 도덕성 강조, 종교의 경건주의가 있다고 앞서 밝혔다. 프란츠는 도덕성이 매우 부족한 인물이다. 구습에 저항하고 이성을 중요시했지만, 가족을 버리는 행동과 종교를 무시하는 언행 등을 근거로 프란츠는 독일 계몽주의 사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듯 독일의 계몽주의는 도덕성과 종교의 경건주의 모두를 중요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함도 꽤 많은 작품이지만,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질풍노도 운동의 절정기 때 탄생했고, 봉건제도로 이루어진 독일에서 그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구습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대신 해주었다는 점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풍노도 운동의 특징인 힘이 넘치는 대사, 자유로운 인물 등장,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과장된 언어 역시 아주 잘 드러났기에 『군도』는 슈투름 운트 드랑 사조의 대표작이라는 것에 충분히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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